중국을 중심으로 발달된 세계 공급망은 지역 내 분업구조 확대로 바뀌고 있다. G2 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 코로나 사태로 복잡한 공급망 구조의 피해, 선진국 리쇼어링 정책 등이 결합된 영향이다.
중국 중심의 공급망 구조가 약화될 경우 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피해가 불가피하다. 국가별 대중국 부가가치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10%를 상회하며 비교국 중 가장 높다. 한국 수출이 재가공을 통해 제3국으로 재 수출되는 규모를 국가별로 구분해보면 중국이 14.2%로 가장 높다. 중국 대신 생산기지로 부상한 ASEAN이 6.7%로 여전히 2배 넘게 차이난다. 미국과 EU는 한 자릿수 초반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산업별로는 대중국 부가가치수출에서 해외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이 상대적으로 타격을 입는다. 전자장비, 고무 및 플라스틱, 의류 및 신발, 화학, 전기장비 등이 해당된다. 특히 전자장비는 대중국 수출에서 중국에서 최종 수요되는 비중이 64% 로 상대적으로 낮다. 36%가 해외에서 최종 수요된다. 상대적으로 해외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의 경우 생산 거점 이동 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2018년부터 시작된 G2 분쟁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장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공급망 재 편 시 가장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대신할 생산거점 지역 내 공급망 선점에 따라 산업별 충격이 차별화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 공급망에 높은 의존도를 보이는 전자장비, 고무 및 플라스틱, 의류 및 신발, 전기장비 등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중요한 산업이 된다. 그 동안 아시아는 중국을, 북중미는 미국을, 유럽은 독일을 거점 국가로 해 역내 교역이 활발히 나타났는데 이러한 흐름에 변화가 관찰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을 대체할 유망 공급망으로 대만을 비롯한 ASEAN 지역이 제기되고 있다. 역내 산업별 수출을 살펴보면 대만과 말레이시아는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장비, 기계, 금속 등 첨단 제품과 중위 기술 산업 비중이 높다. 인도네시아는 섬유, 식음료, 가죽 등 저위기술 생산을 담당해 기술수준별로 공급망 재편이 투트랙(Two-Track)으로 이뤄지고 있다.
북중미권에서는 미국을 대체할 유망 공급망 거점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향후 멕시코가 신규 거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 미국과 멕시코가 역내 교역의 주요 핵심 지역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산업별로는 미국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특화됐 다. 제조업 공급망은 전기장비, 운송장비, 화학, 기계 순으로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 으로 공급망이 형성돼있다. 멕시코는 제조업 비중이 높다. 제조업에서는 전기장비, 운송장비, 금속, 식음료, 기계 순으로 산업 비중이 형성된다.

미국과 멕시코의 산업 구성이 유사한 이유에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대신해 USMCA(미국, 멕시코, 캐나다협정)에 새롭게 포함된 조약들을 보면 알 수 있다. USMCA에는 자동차 관련 규정이 신설됐다. 자동차 원산지를 규정하는데 있어 3국은 역내가치비율(RVC, Regional Value Content) 75%를 포함시켰다. 자동차 생산용 철강 및 알루미늄의 70%는 북미지역 내 생산품으로 제한했다. 또한 신규 도입된 노동가치비율(LVC, Labor Value Content)을 통해 자동차 부품 생산인력의 임금이 시간당 16달러 이상이어야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조약은 자동차 산업에서 수직계열화가 국가별로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술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생산하며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고 노동집약적 상품의 생산은 멕시코가 담당하는 구조다.

유럽권에서는 독일을 대체할 공급망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빠르게 부상 중이다. 프랑스를 거점으로 한 제조업 공급망은 운송장비(8.4%)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보였으며 화학(6.8%), 식음료(5.2%), 기계(5.1%) 등도 높은 비중을 보였다. 이탈리아는 기계(8.6%)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기초 및 가공 금속(5.6%), 식음 료(5.3%) 등도 높은 비중을 이어갔다.
중국을 중심으로 구축된 IT 공급망 일부가 아세안 지역으로 이전되고 있다. 한국의 산업별 수출은 이러한 트렌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세안 시장에서 한국 수출 점유율은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첨단 산업에서도 디스플레이, 반도체, 통신기기, 가전 등 IT 산업이 독보적이다. 비IT 중에서는 전지 산업이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 중위기술과 저위기술 등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은 대부분 중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유지하는 것으로 추정 된다. 중위기술에서는 전자부품과 전기기기 등 IT 관련 산업이, 비 IT 산업으로는 기계, 화학, 철강, 주조, 음식료, 가죽 및 신발, 섬유가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다.

현시비교우위지수(국가별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측정한 수출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첨단 산업에서는 디스플레이, 통신기기가 매우 우수한 경쟁력을 지녔으며 반도체, 전지, 가전 등은 상대적 경쟁 우위를 보였다. 중위기술 산업에서는 기타 전자부품 과 조립금속이 매우 우수한 경쟁력, 화학과 철강 등에서도 경쟁 우위를 유지했다.
정리하면, 아세안 지역은 중국과 함께 IT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양호한 대응을 보였다. 다만 일부 아쉬운 부분도 있다. 아세안 지역에서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는 반도체 점유율 확대가 제한적이다. 코로나 이후 비메모리 수요가 폭증했으나 경쟁력이 약한 데 따른 영향으로 판단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첨단제품의 공급망 재구축이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첨단산업의 공급망 선점이 중국 중심의 공급망 구조가 약화됐을 때 충격을 상쇄해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의 첨단산업 수출 점유율은 답보한다. 금융위기 이전 4% 내외 였던 수출점유율은 3% 초반으로 내려왔다. 전지와 반도체, 가전, 의약 등의 점유율이 확대됐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수출 비중이 높았던 디스플레이, 컴퓨터, 통 신기기 등이 부진한 영향이 컸다. 디스플레이와 컴퓨터, 통신기기는 현재 중국과 아세안 지역이 글로벌 공급망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영향이 크다. 디스플레이와 컴퓨터, 통신기기 등은 중국 공급망 약화 시 타격이 예상되는 품목이다.
코로나 충격 이후 미국이 공급망 관리에 중점적으로 나선 의약, 반도체, 전지 등의 수출점유율이 확대된 것은 긍정적이다. 여기에 가전도 프리미엄화에 성공하면서 수출 비중을 높였다. 점유율 확대에 어려움을 겪은 첨단산업과 달리 중고위기술 산업 수출 점유율은 선방했다. 화학, 기계, 자동차 등 대부분 산업이 수출 점유율 이 확대됐다. 중저위기술 산업에서도 고무, 플라스틱,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의 수출 점유율이 확대됐다.

현시비교우위지수에 따르면 반도체, 전지가 압도적 경쟁 우위를 보인다. 프리미엄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컴퓨터, 통신기기의 경쟁력이 빠르게 후퇴해 산업별로 차별적인 흐름이다. 중위기술 산업에서는 자동차, 철강, 석유정제, 기계를 제외하면 압도적 경쟁 우위는 부재했다.

EU향 수출은 미국향 수출과 모습이 유사했다. 첨단산업 수출 점유율은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해 떨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주력 수출품목이었던 디스플레이와 통신기기, 가전 등 IT 품목의 수출 점유율이 후퇴한 영향이 컸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전지, 반도체, 의약 등의 수출 점유율은 확대됐다. 상대적으로 테크 기업 비중이 높아 반도체 수입 비중이 높았던 미국과 달리 EU는 반도체와 의약, 전지가 유사한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한국은 이 중에서 전지 점유율이 25%를 상회하는 등 유럽 시장 선점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위기술 산업군에서는 대체로 수출 점유율이 완만하게 확대했다. 화학과 철강, 기계의 점유율 확대가 돋보였다. 반면 자동차와 조선은 점유율이 빠졌다. 특히 조선은 30%대였던 수출 점유율이 10%를 하회했다. 자동차 역시 12%대에서 10%대로 점유율 후퇴가 완만하게 이뤄졌다. 저위기술 산업군에서는 0%대 수출 점유율이 계속적으로 이어졌다.

현시비교우위지수를 통해 살펴본 수출경쟁력을 살펴보면 첨단산업군에서는 전지와 반도체가 경쟁 우위에 있다. 특히 전지의 현시비교우위지수는 8를 상회해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다. 반도체 역시 경쟁력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품목이다. 반면 디스플레이는 경쟁 우위에 있으나 경쟁력 약화 속도가 빠르며 컴퓨터와 통신기기, 가전, 정밀기기는 경쟁 열위에 있다. 중위기술 산업에서는 자동차와 조선이 가장 높은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으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대신 화학과 기계, 철강의 경쟁력이 강화됐다. EU 지역향 주력 수출 품목이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에 서 전지, 반도체, 화학, 철강, 기계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심으로 리쇼어링 정책이 강화되면서 교역 데이터 뿐만 아니라 해외 직접투자를 통해 공급망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한국의 해외 직접투자는 생산 거점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중국은 전체 투자 에서 30~40%를 차지했으며 아시아 지역을 포함할 경우 50~60%대를 유지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아시아 비중은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대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었으며 2021년에는 두 지역향 투 자가 전체의 60%를 상회한다. 금융위기 이전과 정반대의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판도가 달라진 지역별 투자와 달리 업종별 투자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크지 않았다. 금융위기 이전 IT, 자동차, 소재를 중심으로 형성된 투자는 현재 IT, 전기장비(2차 전지 포함), 소재(금속, 화학, 고무, 플라스틱) 순으로 투자가 나타나고 있다.
업종별 투자에서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투자 상위 업종인 IT와 소재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대신 전기장비 투자가 확대된 것은 자동차 시장 트렌드에서 비롯된다. 세계 자동차 판매는 2018년을 정점으로 2020년까지 역성장하다 2021년 소폭 반등에 그쳤다. 자동차 시장의 양적 성장이 한계 에 봉착한 가운데 선진국을 중심으로 친환경 자동차라는 질적 성장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완성차 중심의 투자가 아닌 2차전지 등 친환경 자동차 투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산업별 투자 지역을 살펴보면 IT는 여전히 중국 의존도가 높다. 중국은 IT 해외직접투자 중 여전히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15~2016년 중국 금융위기 우려로 투자가 잠깐 투자가 위축된 것을 제외하면 장기적 증가 추세를 그려가고 있다. 명실 상부한 IT 산업의 제1의 생산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G2 분쟁이 장기화되는 조짐 속에 중국 중심의 공급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서 최근 미국향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빠르면 2022년에서 2023년 중에는 중국을 역전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또 다른 주요 수요처인 유럽에서는 투자가 전혀 이뤄 지지 않고 있다. 유럽의 공급망 구조 변화 시 타격이 우려된다.

상대적으로 중국 중심으로 형성된 공급망 구조의 전환이 느린 IT와 달리 여타 산업은 공급망 전환이 신속히 이뤄지고 있다. 신성장 산업으로 부각된 전기장비(2차 전지)가 대표적이다. 2010년도 중반부터 시장 성장과 함께 전기장비 투자도 급증 했다. 현재 친환경자동차 시장은 누적판매량 기준으로 중국(44%), 유럽(33%), 미국(18%)로 형성돼 있다.
시장 규모에 비례해 전기장비 투자 비중도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 중국이 전체 투자의 30% 중반, 미국과 유럽이 20% 중후반 비중을 보인다. 중국 중심으로 공 급망 구조가 발달된 IT와 달리 공급망 형성 초기부터 현지 생산을 통한 공급망 구 조를 확립해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 충격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친환경 자동차 육성 정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2021년 미국과 유럽향 전기장비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투자가 정체되고 있는 중국과 달리 아세안과 인도 등 기타 아시아 지역으로 투자가 늘어나 잠재시 장 공략도 선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소재(금속과 화학, 고무, 플라스틱) 부문 중국향 투자는 2000년 중반 이후 지금까지 매년 5억달러 내외에서 머문다. 아세안 지역향 투자 규모가 가장 크나 2010년 초반 정점 수준을 하회한다. 대신 미국과 유럽향 투자 규모가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 제외 아시아 지역에 이어 제2의 투자 규모를 자랑하며 유럽향 투자 역시 중국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앞서 선진국에서 소재를 중심으로 한 중위기술 산업 수출 점유율 확대와 시장 경쟁력이 제고됐는데 꾸준한 투자 확대가 뒷받 침된 결과로 해석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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