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긁지 않는 복권’이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다이어트와 자기 관리를 통해 이전보다 훨씬 아름답고 세련되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죠. 돈도 마찬가지로 변신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화폐개혁이라는 다이어트를 통해서 말입니다.

화폐의 호칭을 바꾸거나 액면가를 일정 비율로 낮추는 것을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이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동전과 지폐를 새로운 돈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만 원 짜리 지폐를 100원짜리 지폐로 바꾸고, 1,000원짜리 지폐는 10원 짜리로 바꾸는 것입니다. 단위를 ‘원’이 아닌 다른 단위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장점은?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되면 화폐에 표시된 금액도 점차 증가합니다. 하지만 돈의 액면가가 너무 크면 일상 생활이 여러모로 불편해집니다. 과거에 평균 과자 가격이 500원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과자 가격이 올라서 1,000원짜리 지폐와 동전 몇 개가 더 필요합니다. 앞으로 값이 더 오른다면 과자 한 봉지를 사기 위해서 돈을 뭉치로 가지고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화폐 개혁은 이렇듯 계산・지급・장부기재상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실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부 선진국에서는 자국 통화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기도 합니다. 1960년대에 프랑스는 100 대 1의 화폐 개혁을 단행, 달러 대 프랑의 비율을 한 자릿수로 조정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화폐 개혁을 통해서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도 있습니다. 지하경제란 국가 규제나 세금 부과 등을 피할 목적으로 조성되는 숨어 있는 돈입니다. 화폐 개혁을 통해 불법적으로 내지 않았던 세금을 걷을 수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의 평균 지하경제 규모를 보면 통상 해당 국가 GDP의 10% 수준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지하경제 규모가 GDP의 25~30%로 매우 높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면 증세를 최소화하면서 국민들이 더욱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화폐 개혁을 하면, 신규 투자가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새 옷을 사 입는 등 새로운 지출이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돈으로 바꾸게 되면 새로 바꿔야 하는 것이 늘어납니다. 전국의 자동입출금기기 교환, 은행 전산시스템 개편 등 많은 신규 투자와 수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수요의 증가는 경기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단점은?
다이어트를 잘못 하면 ‘요요 현상’이라는 부작용을 겪습니다. 운동과 식단 관리로 단기간에 체중을 감량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살 빼기 전의 습관으로 다시 생활하게 되면 금세 다이어트하기 전의 체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화폐 개혁도 마찬가지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바로, 물가가 매우 빠르게 치솟는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5억 원 하던 아파트가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서 100분의 1인 500만 원으로 바뀌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굉장히 싸졌다는 착시 현상이 들지 않나요? 예를 들어, 3억 원을 대출받아야 살 수 있던 집이 이제 300만 원만 대출받으면 되니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너도 나도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려 하겠죠?
또, 5억 원 하던 아파트가 값을 5,000만 원 올린다면,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크게 화낼 것입니다. 하지만 500만 원에서 50만 원 올렸다고 하면 느껴지는 상승 폭이 훨씬 덜할 수 있습니다. 똑같이 10%가 올랐지만 금액의 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체감이 다른 것입니다. 또한 500만 원짜리 아파트가 1,000만 원이 되는 속도와 5억 원짜리 아파트가 10억 원이 되는 속도 중 전자가 훨씬 빠를 것입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해야 한다면?
우리나라는 총 4번의 화폐 개혁을 했습니다. 1905년의 화폐 개혁은 일본이 조선에 대한 경제 침탈을 목적으로 행해졌습니다. 국가가 자주적 의지로 실시한 화폐 개혁은 1950년, 1953년, 1962년 총 3차례였습니다.
우리나라는 1962년에 화폐 개혁을 한 이후 지금까지 당시 화폐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몸은 성장했지만 옷은 예전에 입던 그대로인 것입니다. 화폐 개혁의 장점도 있지만 그동안 사용해온 제도를 바꾸는 것이기에 비용이 들며, 적응 기간도 걸립니다. 투입되는 비용과 개혁 이후 얻게 되는 이익을 신중히 검토하여 시행한다면, 국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에 더욱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